작년 서울시에서 시민참여 공개방식으로 선정된 서울시 새 슬로건 I SEOUL U에 관한 후속 의견들을 보면서, 참으로 일반 대중의 새로움에 대한 거부반응은 대단한 것이구나를 새삼 느꼈다. 면역반응에서 항체의 저항은 드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다른 두 개의 탈락된 슬로건인Seouling이나 Seoulmate가 선정되었다면 이 논란의 강도가 과연 I SEOUL U의 경우만큼 강하지 않았을까라는 의구심도 가졌다.
많은 비판들을 보면 Hi, Seoul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슬로건으로 서울의 대표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서울시 의도는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공공 브랜드를 개발하는데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참여형 개방으로 이끈 의미 있는 이정표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전문가들 전원이 귀여움과 친밀감을 연상시키는 Seoulmate 대신, 역동성을 암시하고 있는 Seouling(친구가 한국을 여행중이라는 것을 아는 한 친구가 미국에서 전화한다. A: Where are you now? 한국에 있는 친구가 대답한다. B: I’m just seouling now.)대신, 왜 I SEOUL U를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아마 누구나 예측했듯이 일반 시민들은 Seoulmate를 더 많이 선택했을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많은 외국인들 또한 편하게 느껴지는Seoulmate를 더 선호했을 것이다. 서울시 의사결정자들은 억울하게도 또는 기쁘게도(?) 예상치 못한 이 슬로건에 대한 노이즈마케팅 현상까지 경험하고 있어 한편으론 당황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세가지 후보안중 다른 두 개 어느 것을 골라도, 아니 전혀 다른 슬로건이 선정되었더라도 논란의 강약은 있겠지만 결국 논란은 일어났을 것이다. 미국 한 시인의 말대로 논란이란 것은 바보와 현명한 사람을 똑같이 대등하게 대하니까.
I SEOUL U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 외국인과 한국인의 반응이 별반 다르지 않다. 외국인들은 “의미전달이 어렵다(makes little sense)”, “잘못된 선택(bad call)”이다, “덤덤하다(uninspiring)”, 바보같이 웃긴다(ridiculous),” “최악의 선택이다(chose the worst)등이다. 한국인들도“에, 이게 뭐야?” “억지스럽다,” “시시하다,”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들의 기사나 댓글의 반응에서 다소 색다른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압도적으로 많은 분들이 “이건 콩글리쉬야, 멍청해!”또는 “영문법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평소 영문법이 영어의 모든 것이라 확신하는 국가답게 I SEOUL U에서SEOUL은 동사라니 전치사라니, 동사로 쓰니 너무 이상하다라고 지적한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에겐 이 슬로건을 처음 대했다면 한국인 머리속을 점령하고 있는 동사, 전치사라는 개념이 먼저 떠 오르지는 않는다. 한국인들도 “나는 너랑 서울로 연결되어 있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나,너는 대명사, 서울로 연결되다는 동사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진 않을거다. 마찬가지로 한국인 누구나 지금은 정말 쿨하다 생각하는 슬로건,I♥NY에서 ♥는 동사라 떠오르지 않는다.
과연 I♥NY나 I am sterdam, be Berlin이 처음 등장했을 때 반응은 어땠을까? 일부에서 거부반응이 크지 않았을까? I♥NY에서 이니셜 NY를 세계인 누구나 알지는 못한다. New York City는 잘 알겠지만. 그 대단한 세계 최고도시 New York City가 미국의 한 주인가, 서울시 같은 특별시인가, 그 시는 어디 있지? 그런데 NY를 썼다. New York이라 하면 어색하다. New York City다. New York주 내에 있는 대도시 New York City다. 중요한 것은 NY를 New York시 시민들은 모두 안다는 사실이다. I am sterdam은 이게 뭔 말인가? I SEOUL U만큼이나 어색하고 의미가 이상하지 않은가? 난 스테르담이다? I am을 붉은 색으로 디자인했기에 의미를 다채롭게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역시 이 슬로건도 네델란드 국민 모두 암스테르담을 알고 있기에 내놓을 수 있는 선택이었다. be Berlin은 더 억지스럽지 않은가? 여기서 Berlin은 형용사인가, 명사인가? 게다가 become Berlin이 아니고, be다. 굳이 이해하자면 “베를린(적)이다”일 것이다. 뭐가? 아니면 “베를린형 4두 마차다”라는 뜻인가? 이 슬로건은 미국 대통령 John F Kennedy가 1963년 구소련이 통제하는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쌓자 서베를린으로 날아가“Ich bin ein Berliner(I am an Berliner!)”라는 외침에 비해 너무 왜소하다. 명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be Berlin을 접하면 베를린사람이나 독일 사람들 그리고 우리 같은 세계인들도 대강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어쩌다가 한번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YES! Tokyo'에서 '&Tokyo'로 바꾼 도쿄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모두 이상하고 억지스러웠다. 척하면 알아듣는 주목성도 뛰어 나지 않았다. 현재I SEOUL U 논란에는 우리가 서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깔려있다. 선진 도시들에 비해 서울에 대한 호감성이 별로이기 때문 일거다. 선진국 외국 도시들에게 우린 지나친 낭만적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우린 이것들을 정말 성공한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언제 시작한 도시 브랜드들인지 모르고, 다의적 의미도 자유롭게 받아 들이면서 말이다.
I♥NY, I Am sterdam, Be Berlin은 당연 콩글리쉬가 아니다. 단지 문법을 넘어서 창의적으로 도출된 네이밍인 것이다. 도시이름을 변형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밀어 넣고 있다. I SEOUL U도 콩글리쉬가 아니다. 우린 왜 이 슬로건에 대해 즉각적으로 “이건 콩글리쉬야”라며 흥분할까? 여기 한국엔 콩글리쉬들이 도처에 난무해서 그런 것일까? 콩글리쉬는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영어다. 외국인이 쓰지 않는,우리식만의 영어에 대한 우리의 전통 유산(?)이다. 재미있는 점은 외국인들도 몇 번 들으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 fighting!( go team!, 또는 go get it!), handphone(cell phone), SNS(누구도 social network service로 이해하지 않는다)등이 콩글리쉬다. 문장 I were go to the school은 콩글리쉬가 아니다. 문법용법에 맞지 않을 뿐이다. I went to the school로 써야 한다. I SEOUL U의 문법의 흐트러짐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흐트러짐의 자유와 개방이다. 우린 너무 콩글리쉬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것 뿐인데 말이다. 그 대신 한국어는 좀 하지 않는가.
콩글리쉬는 얼마든지 창의적 브랜드네임이 될 수 있다. 난 모든 콩글리쉬야말로 브랜드에 차별화를 불어 넣어주는 그야말로 당당한 브랜드 네임소스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영어를 맘대로 믹스해서 쓰는 South African English인 Afrikaner라는 언어는 영어, 네델란드, 현지 지방어의 혼합체다. Apartheid(인종 차별 정책), commando, khaki, trek은 ‘아프리캉글리쉬’인가? 미국 남부 일부에서 쓰이는 프랑스어와 영어 혼합체 Cajun English는 어떤가? 여기 사는 미국인들은 영어같지도 않은Allon!(Let's go!)을 자주 쓴다. 이들 영어는‘케이정글리쉬’인가? 아니다 그 언어는 멸종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문화의 혼합체로 나온 그 자체의 언어다. 우린 왜 유독 콩글리쉬 문제에 분통을 터트리고 천착하는가? 우리의 영어 부족함에 대해 너무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I SEOUL U가 콩글리쉬라서 안좋은 브랜드라는 말은 이상하다. 영어는 제대로 써야겠지만 곡물을 수확하다 보면 이삭은 생기는 법. 많은 콩글리쉬도 한국에서 조금 지낸 외국인들이라면 익숙해지고 알게 된다. 그래서 서울시 슬로건은 영어로 표기될 수 밖에 없었다. 이 슬로건은 이름을 넘는 어떤 의미의 의도고 이야기다.
아프리카 서남부에 있는 Angola 수도는 Luanda이다. Rewanda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이름이다. 이 도시가 I Luanda U를 쓰거나, The Eternal City (로마), The City of Lights (파리), The Little Big City (쮜리히), The City of Brotherly Love(필라델피아), The Pearl of the Orient(홍콩)같이 분명하고 쉬운 표현 방식을 모방하여 Luanda, The city of sheer African heritage라고 쓰기로 결정한다면 그 효과는 어떨까. 한 브랜드는 총체적, 집약적 능력이다. 이름 하나만 내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리려는 부단한 질적인 노력의 결과다. I SEOUL U는 브랜드네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그 브랜드가치를 쌓고 알리는데 양질의 집중적 화력을 집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브랜드는 갓 태어난 한 아이와 같다. 산모 뱃속에서 막 나온 아기는 아주 낯설게 느껴진다. 심지어 친부모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우주와 같은 존재가 된다. 아이를 출산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이다. I SEOUL U는 이제 갓 태어났다. 결국 서울 시민이, 서울시 당국이,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서울을 세계로 알리는 것은 슬로건 하나로 되지 않는다. I♥NY나 I Amsterdam, Be Berlin, &Tokyo는 슬로건 하나 덕으로 도시의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니다. 슬로건이 무한가치의 한 촉매제가 되어 명성을 쌓게 만들었다. 우리는 아이를 하나만 낳지 않는다. 한 아이로만, 슬로건 하나에만 미래를 투자하기엔 미래는 변동적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키우려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 브랜드를 키우려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많이 드는 법이다. 과연 이름 하나 잘 만들었다고 기업은 그 이름을 알리는 노력도 안 할 것인가? ‘참진 이슬로.’ 얼마나 잘 만든 브랜드인가? 그렇다고 이 브랜드는 모든 것을 손 놓고 있었나? 이 브랜드를 위해 이 기업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광고하고 프로모션했다.
I SEOUL U는 약간의 신비한 애매성이 있어 의미해석에 있어 더욱 개방적이다. 열림의 희망과 도전이다. 서울시는 용도를 탄력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했다. 이 브랜드는 Seoulmate, Hi, Seoul처럼 금방 식상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 브랜드의 장기전에도 강할 것 같다.
Wachtell, Lipton, Rosen & Katz. 너무 이상한 괴기한 브랜드 아닌가? 이게 뭐지? 미국 최고 명성있다 랭킹된 파트너들 이름이 나열된 로펌이다. 2015년 최고 전망있는 스다트업 기업 브랜드 Slack은? 대한민국 최고 로펌이라고 하는 김앤장은 이제 아주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3M, IBM, H&M, McDonald’s 이런 브랜드네임들을 처음 만났다 생각해보자. “에헤, 뭐 이런 브랜드이름들이 있어?” 세계 100대 브랜드 이름들을 처음 대하듯 바라보라. Yahoo, Google? Samsung, Hyundae는 한국어로도 유치하고, 영어로는 뭔가 알지 모를 하나의 의성어처럼 들렸다. 1990년대만 해도 해외에 나간 한국인들이 코웃음치던 브랜드들이었다.
이제 갓 태어난 I SEOUL U라는 브랜드를 키우는데 부모외에 많은 조력자가 있다. 도움 주는 많은 주변인들이 있어야 한다. 억지스럽다,디자인 질이 떨어진다, 어감이 이상하다, 진짜 콩글리쉬의 전형이다라고만 비판하지 말자. I SEOUL U는 언어적으로 콩글리쉬도 아니고,의미의 복합성과 사용이 개방성을 담은 브랜드다. 혹자는 그냥 Hi, Seoul이 더 나았다고 한다. 또 한편에선 누군가 Hi가 high랑 발음이 같고 그 high가 약물에 취한 상태라는 뜻도 있어 부정적이라 지적했다. 전자는 그냥 단순 반응이고 후자는 정말 논리적 억지다. 미국 그랜드 캐년 관광중 옆을 지나가는 낯선 미국인이 우리에게 웃으며 Hi하고 인사하면 너 약먹었니 하면서 미소 짓는다는 것인가?
서울시는 애초부터 왜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한지 호소했다. I SEOUL U는 진정, 어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제 3세대 브랜드 작업으로서 시민과 전문가들이 공유한 의미있는 합작의 결과라 알고 있다. I SEOUL U, 신통방통하게 태어난 아이니 우리가 이 아이를 키울 앞날에 더 현명하게 신경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딱 맞는 한 잔의 커피맛은 없는 법이다. 서울시 새로운 슬로건에 대한 비판들은 덜 분석적이고 더 선정적이다. 이 이름을 넘어서 서울시와 서울시민, 대한민국이 이 브랜드를 잘 관리하고, 잘 지켜봐야 하는 것이 더 큰 숙제다.
(박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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