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6일 화요일

How Canada Came to Dominate the Global Supply of Ginseng





캐나다 Ontario주 4,000명의 작은 도시 Delhi. Toronto에서 두시간 자동차 거리정도. 이 곳이 수백명의 인삼재배 농부가 참가하는 대형 인삼 컨벤션이 열리는 곳이라구요? 


이유는 3백 5십년 전 캐나다 첫 이민자들, 한 카톨릭예수교 성직자, 캐나다 중국간 초기 무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캐나다 동부에 거주했던 이로쿠아 인디언(Iroquois)족은 북미에서 인삼의 진가를 깨달았던 부족이었습니다. 인삼뿌리를 수확, 행사와 열을 진정시키는 약으로 썻습니다. 관절염, 종기고름, 붓기 치료에도 쓰였죠. 미국 체로키(Cherokee)족에게도 인삼은 "수확할 가치가 없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영험한 약초"로 통했습니다. 

하지만 예수회 성직자 Joseph-Francois Lafitau는 그럴 가치가 있었는지 1715년부터 인삼뿌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는 중국인들은 인삼을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인들에게 무역의 손짓을 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아시아로의 수출상품 1호인 셈이죠. 하지만 그 거래는 곧 붕괴되었습니다 1750년경 이미 인삼공급은 과잉이었고, 무역상들이 옮기는 과정에서 건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중국에 도착한 인삼제품들은 저질이 되어 버린 것이죠.

그후 1800년대 후반부터 인삼은 온타리오주에 조금씩 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대다수 농부들에겐 담배재배가 훨씬 매력적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1980년대가 되어서야 정부가 담배회사들을 규제하고 건강을 의식하는 소비자가 담배사용을 줄임에 따라 농부들은 담배처럼 경작토지에 맞고 높은 수익성을 가져 올 대체농산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인삼시장이 다시 커지게 된것입니다. 2001에 비해 인삼 생산농지는 두 배로 증가했고, 지금은 캐나다에 연간 $472 million를 가져다 주는 큰 효자상품이 되었습니다.

여기 농부들은 농사를 지으며 홍콩 인삼 바이어들이 얼마나 사줄 지, 가격은 얼마나 쳐줄지 항시 중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홍콩의 대형 인삼 수입업체 Hang Fat이 다량의 주문을 끊어 버린 올해, 그들은 자신들의 인삼농사 결실이 어떨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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