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4일 일요일

Finding Love Again, This Time With a Man




1996년 제 아내 Clare는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전화로 작별인사를 한 지 몆 시간 지나서였죠. 제 나이 70이었고 우리 둘은 결혼 생활 48년을 아주 행복하게 멋지게 즐겼습니다. 



우린 2차대전중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정치적 성향이 같아 전국적인 학생운동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제가 1991년 상원에 도전했을 때 그녀는 저를 돕기 위해 자신의 정치운동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린 펜실베니아주 선거에서 많은 표차로 이겼습니다. 제가 1994년 재선에 근소한 표차로 실패했을 때 사람들은  제 아내가 나갔다면 이겼을 것이라 했습니다.

 

2차세계대전 전 미국의 대공항시절 그녀는 나보다 어렵게 살아서인지 낙관론자인 나와는 다른 비관론자였지만 현대 사회 반세기를 함께 했습니다. 2차대전과 미국주도의 경제부흥을 보면서 케네디대통령, 마틴루터킹목사, 존슨대통령을 모셨습니다.



전 그녀가 하늘나라로 간 지 몇 달간 그녀가 없다는 사실에 적응하느라 무척 애를 썻습니다. 



제 나이 70살에 아내가 멀리 떠났으니 저에게 무슨 사랑이라는 것이 다시 있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녀가 떠난 지 5년 후 Florida주 Fort Lauderdale 해변에서 저는 수영하고 있던 중  25살의 Matthew Charlton를 만났습니다. 그는 모험적이었고, 생각을 깊이 했고, 아주 호기심이 많은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저랑 대화중 저를 "정말 마음이 젊은 분"이라고 하더군요.



우린 전국을 많이 여행했고, 유럽도 여행다녔습니다. 우리는 여러 차례 함께 여행 다니면서 우리가 정말 친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건 깊은 사랑과 같은 것이었는데 제가 1940년대 죽은 아내  클레어를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이었어요.


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조심스럽게 스크랩북을 제 가족에게 보이면 친구를 소개했습니다. 그 책에는 우리들이 여행하면서 찍은 많은 사진들이 들어 있었죠.


저의 세 자녀들은 우리의 사랑을 인정하면서 Matthew를 가족으로 받아 들였고, 매튜의 부모들도 나를 따스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15년을 함께 지내며 정말 서로의 헌신과 애정을 주고 받으며 살았습니다. 


저는 1960년대 인권운동의 기수 마틴루터킹과 함께 일했을 때 느꼈습니다. 인권운동은  창의적 10년만이라는 짧은 기간에 큰 변화를 낳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동성애 결혼 문제도 지난 10년이 획기적이었습니다. 


전 게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이 시대의 인권의 변화가 큰 축복이 된 것입니다. 미국 대법원이 President Obama가 소위 말했던"결혼의 권위(the dignity of marriage)"를 강화해 주는 판결을 내리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결혼은 한 사람의 성의 정체성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에 기초하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전 정말 행운아이고 행복합니다.


저는 인생에서 이제 두 번째 강렬한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4월 30일, 제가 90살, 매튜가 40살 나이로 결혼식을 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 서게 할 때까지 사랑하고 아끼며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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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개인적으론 좀 역겹긴 하지만요, 시대가 그러니 '좀 아름답다'고 하고 싶습니다. 이런 걸 political correctness라고 합니다. 역시 글을 읽어 보시면 항상 뉴욕타임즈이죠?  이 글을 읽는 독자분도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제 마음 한구석에선 혹시 이 영감이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불편한 마음도 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저는 이런 동시대인의 감성을 그냥 멀리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글을 블로그에 소개하는 이유는 이 시대를 함께 공감하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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