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하는 회사, 우리가 물건을 구입해주는 기업, 우리가 참가하는 정치 시스템,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책임감있게 말해주고 있지 않다. 그들은 전혀 우리를 신경쓰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예전과 다르게 우리에겐 선택권들이 점점 더 많이 박탈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모든 방면에서 이 현실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떠나라(Take it or leave)의 상황이다.
기업들은 우리를 대체 가능한 톱니바퀴의 한개 날로 대접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 우리는 이 일을 해야 할 운명이고 다른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일하는 노동력 요구는 30년 전보다 더 줄었다. 많은 중류층 주부와 엄마들이 일자리에 나섰는데 말이다. 그러기에 기업들은 경고없이 직원을 해고해도 되고, 파타임과 비정규직으로 정규직을 대체해 임금을 아끼려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린 소비자로서도 나쁜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 역시 선택권은 줄어 들었다. 소비자들은 돈을 내는 너무 당연한 존재일 뿐이다.
예를 들어 미국 항공사들은 거대 합병을 통해 비행 루트을 나눠 먹고 비행요금을 공모하고 있다. 2005년 미국은 9개의 대형 항공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4개다.
미국인 80%가 인터넷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기업들은 Comcast, AT&T, AT&T,뿐이다. 게다가 지금 AT&T는 Time-Warner를 인수하려 한다.
은행들은 더욱 대형화되어, 1990년 5대 은행이 은행 자산 10%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45%를 가지고 있다.
거대 건강 보험사는 더욱 비대해졌고, 병원 체인들도 더 대형화되었으며, 디지털 프랫폼은 Amazon, Facebook, Google 세 곳이 독차지 한다.
이 모든 것은 소비자들의 선택권들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의 기력은 소진될 수 밖에 없다.
우리들의 불평은 어디에서도 먹히지 않는다. 자동화 응답기만 돌아 갈 뿐이다.
정치가들은 자신들에 대한 경쟁을 더 약하게 조작해 우리 의견 따위를 들을 필요도 없다. 2016년 의회선거 지역중 85%가 기존 의원에게 안전한 곳으로 평가된다. 3% 정도만 막상막하로 평가된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몇 개의 주만이 경합지역이라 여겨진다. 그 지역에서만 사람들은 대선 후보자들을 잠깐 볼 수 있다. 다른 주 대부분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당연한 표로 여겨진다.
미국인들의 무력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들을 경쟁속에서 처벌할 수 없으니,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 목소리를 듣도록 할 수 있는 힘을 뺏겨 버렸다.
50년전 민간기업 노동자 1/3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었다. 그들은 더 나은 근무조건, 즉 그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경제의 성장된 몫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민간기업 노동자 노조 가입이 7%도 안된다.
1960년대 큰 목소리를 낸 소비자운동은 안전한 제품, 낮은 가격, 독과점에 대한 반독점투쟁, 기업공탁금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지금 소비자 운동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리는가.
수십년전 정당들은 강력한 지역 목소리를 내는 지역 뿌리들이 있었다. 이제 두 정당은 거대한 기금회수 기계들로 변신했다.
우리 경제와 사회는 구성원 대부분이 이 시스템이 자신들을 위해 작동된다고 느낄 때 건강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우리 삶 모든 부문, 즉 노동자로서, 소비자로서, 유권자로서 심화되는 무기력감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 시스템이 위의 몇 사람에게만 작동되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ROBERT B. REICH’s film “Inequality for All” is now available on DVD and blu-ray, and on Netflix. Watch the trailer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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